논문소개 ·
향수 17만 개가 말해 준 120년의 비밀 — GrassAccord가 읽어 주는 논문 「1900년 이후 향수의 문화적 진화」
샤넬 No 5를 닮은 향수는 몇 개일까요? 왜 요즘 향수는 단순해졌는데 더 새롭게 느껴질까요? 1900년부터 2024년까지 나온 향수 약 17만 개를 분석한 논문을 초보 조향사의 눈높이로 풀었습니다. 원본과 클론의 평가 차이도 숫자 그대로 옮겼습니다.

1921년에 나온 향수 하나가 있습니다. 그 뒤 100년 동안 이 향수를 닮았다는 말을 들은 향수가 68개나 나왔습니다. 2010년에 나온 또 다른 향수는 불과 10년 만에 닮은 향수 36개를 낳았습니다. 앞의 것은 샤넬 No 5, 뒤의 것은 크리드 어벤투스입니다.
이 숫자는 향수 애호가의 감상이 아닙니다. 올여름 공개된 한 논문이 1900년부터 2024년까지 나온 향수 약 17만 개를 한꺼번에 분석해서 찾아낸 결과입니다. 연구팀은 향수를 음악이나 패션처럼 시대에 따라 진화하는 문화로 보고, 120년 치 향수를 한 장의 지도처럼 펼쳐 놓았습니다.
조향을 막 시작한 분이라면 한 번쯤 이런 고민을 해 보셨을 겁니다.
- 원료를 많이 넣을수록 향이 풍성해지지 않을까?
- 유명한 향수를 따라 만들면 반은 성공한 것 아닐까?
- 남들과 다른 향은 대체 어떻게 만드는 걸까?
이 논문은 세 질문 모두에 숫자로 답합니다. 그리고 그 답은 생각보다 흥미롭습니다.
이번 글은 GrassAccord 저널의 첫 논문소개입니다. 앞부분에서는 논문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찾았는지 소개하고, 뒷부분에서는 조향을 배우는 분이 이 결과를 조향대에서 어떻게 써먹을 수 있을지 저희의 해설을 덧붙였습니다. 처음 보는 용어는 맨 아래에 따로 풀어 두었으니 편하게 읽어 주세요.
먼저, 어떤 논문인가요
- 제목: Cultural Evolution of Perfumes since 1900 (1900년 이후 향수의 문화적 진화)
- 저자: 바히드 사타리파드(Vahid Satarifard) 외 6명. 미국 예일대학교 휴먼 네이처 랩을 중심으로 펜실베이니아대학교, MIT 미디어랩, 독일 막스플랑크 인간발달연구소 연구자들이 참여했습니다. 사회 관계망 연구로 잘 알려진 니컬러스 크리스타키스(Nicholas A. Christakis) 교수, 그리고 오랫동안 향수를 만들어 온 현역 조향사 크리스토프 로다미엘(Christophe Laudamiel)도 공동 저자입니다.
- 공개: 2026년 7월 21일, 논문 공개 사이트 아카이브(arXiv)에 올라왔습니다.
- 원문 보기: arxiv.org/abs/2607.19520 — 누구나 무료로 읽을 수 있습니다(영어). PDF와 웹 화면 둘 다 있습니다.
- 주의할 점: 아직 학술지 심사를 거치지 않은 공개 논문입니다. 심사 과정에서 숫자나 해석이 바뀔 수 있습니다.
사회과학자, 생물학자, 디자인 연구자, 그리고 조향사가 한 팀이 됐다는 점이 이 논문의 재미입니다. 향수를 화학이 아니라 사람들이 서로 주고받으며 바꿔 온 문화로 들여다봤거든요.
왜 이 논문을 첫 논문소개로 골랐나요
조향을 공부하다 보면 "요즘 향수는 예전 같지 않다", "다 비슷비슷하다" 같은 말을 자주 듣게 됩니다. 맞는 말일 수도, 틀린 말일 수도 있습니다. 그동안은 각자의 기억과 취향으로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죠.
이 논문은 그 이야기를 처음으로 큰 숫자 위에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 주지 않습니다. 요즘 향수는 정말 단순해졌지만, 동시에 예전보다 훨씬 낯선 조합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비슷비슷하다는 느낌과 새롭다는 느낌이 둘 다 맞았던 셈입니다.
초보 조향사에게 이보다 좋은 지도는 드뭅니다. 지금 어디쯤에 서 있는지, 업계가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를 알면 무엇부터 연습할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17만 개의 향수, 어떻게 분석했을까요
세 곳의 향수 사이트를 합쳤습니다
연구팀은 향수 정보를 모아 둔 온라인 사이트 세 곳(프래그런티카·파르퓨모·아로모)의 자료를 합쳤습니다. 모인 숫자는 이렇습니다.
- 향수 169,759개
- 브랜드 8,332곳
- 조향사 3,050명
- "이 향수에서 이런 향이 난다"는 사용자 투표 약 2,590만 건
연구팀은 이것을 지금까지 연구된 향수 자료 가운데 가장 크다고 설명합니다. 본문 분석은 이용자가 가장 많은 프래그런티카 자료로 하고, 나머지 두 곳은 결과가 맞는지 확인하는 데 썼습니다.
여기서 꼭 알아 둘 점이 있습니다. 이 자료에는 실제 배합비가 없습니다. 브랜드가 소개한 노트 목록과 사용자 투표만 있습니다. 그래서 이 논문이 말하는 "단순해졌다"는 실제 원료 수가 아니라 소개된 노트의 구성이 단순해졌다는 뜻입니다. 연구팀도 이 점을 한계로 분명히 적었습니다.
향수를 네 가지 눈으로 봤습니다
- 얼마나 복잡한가 — 한 향수 안에서 여러 노트가 얼마나 고르게 섞여 있는지를 숫자로 바꿨습니다. 존재감 있는 노트가 많고 고르게 퍼져 있을수록 값이 커집니다.
- 얼마나 새로운가 — 그 향수의 노트 짝꿍(두 개, 세 개씩 묶은 조합)이 그 전까지 나온 향수에서 얼마나 드물었는지를 쟀습니다. 처음 보는 조합일수록 값이 커집니다.
- 누가 누구를 따라 했나 — 사용자들이 남긴 "이 향수는 저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는 기록을 시간 순서로 이어 향수의 족보를 그렸습니다.
- 조향사끼리 영향을 주고받나 — 함께 작업한 조향사들을 연결한 관계망을 만들고, 스타일이 그 연결을 따라 퍼지는지 봤습니다.
숫자 두 개만 미리 익혀 두세요
이 논문을 읽을 때 가장 자주 나오는 숫자가 복잡도와 새로움입니다. 어렵게 느껴질 수 있으니 간단한 예로 먼저 감을 잡아 보겠습니다.
향수 두 개를 떠올려 보세요. 하나는 장미, 재스민, 아이리스, 바닐라, 샌달우드, 앰버, 머스크, 베르가못 여덟 가지가 비슷한 무게로 들어 있다고 소개된 향수입니다. 다른 하나는 시더와 소금 같은 바다 향, 이렇게 두세 가지가 주인공인 향수입니다. 앞의 향수는 복잡도가 높고, 뒤의 향수는 복잡도가 낮습니다. 노트가 많고 고르게 퍼져 있을수록 이 숫자가 커집니다.
새로움은 다른 질문입니다. "이 노트들이 같은 향수에 함께 들어간 적이 예전에 얼마나 있었나?"를 묻습니다. 장미와 재스민은 수없이 함께 쓰였으니 이 짝은 새롭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거의 만난 적 없는 두 노트를 짝지었다면, 노트 수가 적어도 새로움 점수는 높게 나옵니다.
그러니 복잡도는 "몇 가지를 섞었나", 새로움은 "얼마나 낯선 짝을 지었나"로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이 두 숫자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이 이 논문의 첫 번째 발견입니다.
향수 출시가 폭발한 세 시대
본격적인 결과로 들어가기 전에, 연구팀이 그린 큰 그림부터 보겠습니다. 해마다 새로 나온 향수 수를 그려 보니 120년이 세 시기로 나뉘었습니다.
- 고전 조향 시대(1926년 이전) — 향수 출시가 천천히 늘던 시기입니다. 1918년 무렵 한 번 크게 늘었습니다.
- 정체기(1926~1979년) — 자료에 남은 신제품이 해마다 20개 안팎에서 오래 머물렀습니다.
- 산업 조향 시대(1979년 이후) — 출시가 폭발적으로 늘었습니다. 2014~2018년 무렵 다시 한번 가속이 붙어, 이제는 해마다 약 6,000개의 새 향수가 쏟아지는 수준까지 왔습니다.
해마다 6,000개라면 하루에 열여섯 개꼴입니다. 신제품이 이렇게 많은 시장에서 눈에 띄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뒤에 나올 "더 새로워졌다"는 결과를 이 숫자와 함께 읽으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다만 이 시대 이름은 연구팀이 분석의 편의를 위해 붙인 것이고, 향수 역사학자들이 함께 쓰는 용어는 아니라고 논문에 적혀 있습니다. 또 온라인 사이트에 기록된 향수만 센 것이라, 옛날 향수일수록 빠진 것이 많을 수 있습니다.
120년 동안 무엇이 바뀌었을까요
어떤 노트는 사라지고, 어떤 노트는 떠올랐습니다
자주 쓰이는 노트 50개의 유행을 해마다 그려 보니, 시대가 바뀌어도 늘 자리를 지킨 노트가 있었습니다. 머스크, 재스민, 장미, 베르가못, 샌달우드, 앰버입니다. 120년 동안 유행을 타지 않은 향수의 뼈대라고 할 만합니다.
반대로 1990년대 이후 크게 움직인 노트도 있습니다. 오크모스와 일랑일랑은 줄었고, 바닐라와 시더는 늘었습니다. 오크모스가 줄어든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피부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어 국제향료협회(IFRA)가 사용량을 단계적으로 줄였고, 1997년에는 완제품의 0.1%까지로 묶였습니다.
어코드 단위로 보면 변화가 더 극적입니다. 1990년대에 늘기 시작한 과일 향(프루티) 어코드는 2000년대까지 계속 늘었고, 흙 향·이끼 향·알데하이드 어코드는 뚜렷하게 줄었습니다. 알데하이드는 샤넬 No 5에 쓰이면서 20세기 초 가장 널리 퍼진 어코드가 됐는데, 1990년대 초에 내리막을 탔습니다. 연구팀은 이것을 향수 미학의 문화적 전환점이라고 불렀습니다.
여성 향수의 시대에서 중성 향수로
20세기 대부분 동안 시장의 주인공은 여성용 향수였습니다. 그런데 1990년대 후반부터 남녀 구분 없는 중성(유니섹스) 향수가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재미있는 점은 노트의 성별 이미지가 중립 쪽으로 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튜베로즈·아이리스·장미·재스민은 여전히 여성적인 노트로, 세이지와 레더는 여전히 남성적인 노트로 남았습니다. 의미 있게 바뀐 노트 가운데 약 61%는 여성 쪽에서 남성 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스티락스, 인센스, 베티버, 오크모스, 레몬, 페티그레인 같은 노트가 성별의 경계를 넘어갔습니다.
세계의 향은 생각보다 비슷합니다
나라별로 향수를 나눠 보니 서유럽, 영어권, 중남미, 그리고 아시아 대부분이 상큼하고 과일 같고 달콤한 어코드를 중심으로 한 "세계 주류"에 모여 있었습니다. 가장 뚜렷하게 다른 곳은 중동이었습니다. 우드, 앰버, 따뜻한 스파이시 어코드가 눈에 띄게 많았는데, 오랜 동방 향 전통과 맞닿아 있다고 연구팀은 설명합니다. 지역이 나라별 향의 차이를 설명하는 정도는 노트 기준 13%, 어코드 기준 17%로, 의미는 있지만 크지는 않았습니다.
단순해졌는데 더 새로워졌다
이 논문에서 가장 많이 인용될 결과는 아마 이것일 겁니다.
1990년 무렵, 향수가 단순해졌습니다
1965년부터 1990년까지 향수의 복잡도는 평균 약 3.7로 꽤 안정적이었습니다. 그런데 1990년 무렵 갑자기 떨어지기 시작해, 2000년부터 2024년까지는 약 3.0 수준에서 다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 값은 "비트"라는 단위로 잰 것인데, 정확한 뜻보다 방향을 기억하면 충분합니다. 숫자가 작아졌다는 것은 한 향수 안에서 존재감 있는 노트의 가짓수가 줄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동시에 훨씬 새로워졌습니다
단순해졌다고 뻔해진 것은 아닙니다. 노트 조합의 새로움은 1900년대 초 약 2.3에서 2020년대 약 7.6까지 꾸준히 올랐고, 1990년대부터 가장 가파르게 올랐습니다. 재료 수는 줄었는데, 그 재료를 짝짓는 방식은 점점 예상 밖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연구팀은 두 극단에 있는 향수도 짚었습니다.
- 복잡하지만 덜 새로운 쪽의 끝: 샤넬 No 5(1921), 겔랑 뢰르 블루(1912), 랑방 아르페주(1927)
- 단순하지만 새로운 쪽의 끝: 조 말론 런던 우드 세이지 앤 씨 솔트(2014), 메종 프란시스 커정 바카라 루주 540(2015), 이센트릭 몰레큘스 몰레큘 01 + 만다린(2021)
한쪽은 100년 전의 걸작이고, 다른 쪽은 지난 10년 사이 가장 많이 이야기된 향수들입니다. 두 그룹을 나란히 놓으면 120년의 흐름이 한눈에 보입니다.
왜 단순해졌을까요
연구팀은 이유를 하나로 단정하지 않고, 가능한 설명 몇 가지를 함께 내놓았습니다.
- 매출을 중시하는 업계 구조 — 인수·합병으로 큰 회사가 늘면서 더 짧은 배합비로 옮겨 갔을 수 있습니다.
- 미니멀리즘의 흐름 — 건축·디자인(1920년대), 미술(1960년대)을 거쳐 온 미니멀리즘이 향수로 이어졌을 수 있습니다.
- 독립 조향사의 등장 — 1990년대 말부터 온라인으로 원료를 구하고 향수를 팔기 쉬워지면서 독립 조향사가 늘었습니다. 혼자 작업하는 사람에게는 짧은 배합비가 현실적으로 다루기 쉽습니다.
- 선배 조향사의 영향 — 짧은 배합비로 유명했던 조향사 에드몽 루드니츠카(Edmond Roudnitska)처럼, 관계망의 중심에 있는 조향사가 젊은 세대를 미니멀한 쪽으로 이끌었을 수 있습니다.
규제가 새로운 조합을 밀어냈다는 증거
연구팀은 오크모스 규제를 일종의 자연 실험으로 썼습니다. 오크모스가 들어 있던 향수를 그렇지 않은 향수와 비교했더니, 규제가 강해질수록 오크모스 향수가 더 단순해지고 더 새로워졌습니다. 1988년의 첫 제한 때는 차이가 보이지 않았지만, 제한이 가장 강해진 2008년 무렵에는 복잡도가 0.19만큼 더 떨어지고 새로움이 1.20만큼 더 올랐습니다. 쓸 수 있는 재료가 묶이면 조향사가 새로운 길을 찾는다는 해석입니다.
향수에도 족보가 있다
샤넬 No 5는 100년 동안 68개, 어벤투스는 10년 동안 36개
사용자들이 남긴 "닮았다"는 기록을 시간 순서로 이으면 향수의 족보가 생깁니다. 연구팀은 그냥 비슷하다는 느낌이 아니라, 노트가 실제로 많이 겹치는 쌍(상위 5%)만 남겨 족보를 그렸습니다.
가장 큰 두 집안이 샤넬 No 5와 크리드 어벤투스입니다. 샤넬 No 5는 한 세기에 걸쳐 68개 향수의 뿌리가 됐고, 어벤투스는 단 10년 만에 36개 향수를 낳았습니다. 그 밖에 코티의 익스클러메이션, 콩투아 쉬드 파시피크의 알로하 티아레, 지방시의 젠틀맨(1974), 로베르 피게의 프라카도 많이 따라 한 향수로 꼽혔습니다.
따라 하기는 흔합니다. 그리고 대부분 다른 브랜드가 따라 합니다
족보에 오른 후손 향수 2,563개 가운데 62.6%는 다른 브랜드가 만든 클론이었고, 37.4%는 같은 브랜드가 낸 변형판(플랭커)이었습니다. 또 28.6%는 부모가 둘이었습니다. 두 향수를 동시에 떠올리게 한다는 뜻인데, 연구팀은 이것을 생물의 잡종과 비슷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시장 전체에서 클론은 최소 1.0~11.7%로 추정됐습니다. 닮은 정도를 얼마나 엄격하게 보느냐에 따라 숫자가 달라집니다.
그런데 따라 하는 방식이 바뀌었습니다
연구팀은 각 시대에 "따라 하면 유리했던 노트"가 얼마나 되는지도 셌습니다. 1965~1984년에는 36%, 1985~2004년에는 34%였는데, 2005~2024년에는 7%로 크게 줄었습니다. 특히 1985~2004년에는 이미 흔해진 향의 모티프를 사람들이 오히려 피하는 경향까지 보였습니다.
요즘 향수는 유명한 향수를 그대로 따라가기보다 새로운 노트를 스스로 고르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기존 흐름을 뒤흔드는 정도는 2000년 무렵 정점을 찍었고, 그 뒤로는 조금씩 다지는 쪽으로 돌아섰습니다.
원본과 클론, 실제로 얼마나 차이 날까요
향수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가장 궁금한 대목일 겁니다. 연구팀은 원본 향수 123개, 플랭커 2,222개, 클론 12,028개를 사용자 평가로 비교했습니다. 숫자는 이렇습니다.
- 지속력(향이 얼마나 오래가나): 원본 3.45, 클론 3.26
- 확산력(향이 공기 중에 얼마나 퍼지나): 원본 3.10, 클론 2.95
- 전체 평점: 원본 4.05, 클론 3.96
- 가격 대비 만족: 클론이 조금 높았지만 통계적으로 의미 있는 차이는 아니었습니다
- 플랭커: 모든 항목에서 원본과 클론 사이에 있었습니다
정리하면 원본이 세 항목에서 모두 앞섰고, 그 차이는 0.1~0.2점 정도였습니다. 클론이 덜 좋게 평가된 이유로 연구팀은 두 가지 가능성을 들었습니다. 더 싼 원료로 바꿨기 때문일 수도 있고, 가격과 브랜드 이름이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주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인지는 이 연구로 가려지지 않았습니다.
평점을 가장 크게 움직인 것은 지속력
평점과 무엇이 연결되는지도 따져 봤습니다. 가장 강하게 연결된 것은 지속력이었습니다. 반면 확산력과 새로움은 평점과 오히려 반대 방향으로 연결됐습니다. 가격 대비 만족은 의미 있는 연결이 없었습니다.
스타일은 세 다리 건너까지 퍼진다
조향은 원래 혼자 하는 일이었습니다
향수는 오랫동안 한 명의 조향사, 이른바 "코"가 만드는 작품이었습니다. 연구팀은 이 점에서 향수가 음악보다 그림에 가깝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함께 작업한 향수는 해마다 8~15% 정도에 그쳤고, 그 비율은 2000년대 약 13%에서 2010~2020년 약 8%로 오히려 줄었습니다.
함께 일하면 닮아 갑니다
조향사 협업 관계망에서 가장 큰 무리는 500명이었습니다. 함께 작업한 조향사들은 서로의 스타일을 닮아 갔는데, 바로 함께 일한 사이에서 가장 강했고 두 다리·세 다리로 멀어질수록 약해졌습니다. 연구팀 설명으로는 세 다리를 넘어가면 우연히 고른 조향사끼리보다도 덜 닮았습니다. 영향은 명성이 높은 조향사에서 낮은 조향사 쪽으로 더 많이 흘렀습니다.
함께 작업하게 되는 가장 강한 이유는 같은 브랜드에서 일한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협업 경험이 있는 조향사의 작품은 혼자 작업하는 조향사의 작품보다 기존 흐름을 뒤흔드는 정도가 낮았습니다. 함께 일하면 다듬어지고, 혼자 일하면 튀어나온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해설: 조향을 배우는 분께 이 논문이 말해 주는 것
여기서부터는 논문의 결론이 아니라 GrassAccord의 해석입니다.
원료를 늘리는 것이 실력은 아닙니다
처음 배합을 짜면 빈 곳이 불안해서 원료를 하나, 또 하나 더하게 됩니다. 이 논문은 지난 30년 동안 업계 전체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였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노트 수는 줄었고, 그 대신 조합이 새로워졌습니다. 바카라 루주 540이나 우드 세이지 앤 씨 솔트가 사랑받은 이유도 원료의 가짓수가 아니라 낯선 짝짓기에 있었습니다.
연습할 때 원료를 열 가지 이하로 묶어 두고 하나의 어코드를 완성해 보세요. 원료 하나를 뺐을 때 향이 무너지는지 확인하는 습관이 생기면, 각 원료가 왜 들어갔는지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그 설명이 쌓이는 것이 실력입니다.
변하지 않는 뼈대부터 익히세요
120년 동안 자리를 지킨 머스크, 재스민, 장미, 베르가못, 샌달우드, 앰버는 초보에게 좋은 교과서입니다. 유행하는 노트는 10년 뒤에 바뀌지만, 이 여섯 가지를 다루는 감각은 오래 갑니다. 하나씩 단독으로 맡아 보고, 둘씩 짝지어 보면서 각자의 성격을 몸으로 기억해 두세요.
제한은 새로운 아이디어의 출발점이 됩니다
오크모스 사례는 초보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쓰고 싶은 원료가 규제에 걸리거나 구하기 어려울 때가 반드시 옵니다. 그때 "이제 못 만든다"가 아니라 "다른 길로 비슷한 인상을 만들어 보자"로 생각을 바꾸면, 그 과정에서 자기만의 조합이 나옵니다. 일부러 원료 하나를 금지하고 연습해 보는 것도 좋은 훈련입니다.
유명한 향수는 출발점으로 쓰세요
원본과 클론의 차이가 0.1~0.2점이라는 결과는 두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잘 만든 클론은 원본에 꽤 가깝게 평가받는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래도 원본이 꾸준히 조금 더 높게 평가받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GrassAccord도 이름난 향수를 공부 재료로 삼은 배합비를 판매합니다. 그래서 이 숫자를 줄이거나 부풀리지 않고 그대로 옮겼습니다. 저희가 권하는 방법은 유명한 향수를 답안지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쓰는 것입니다. 구조를 이해한 다음 원료 하나를 바꾸고, 비율을 조금 옮기면서 자기 향으로 키워 가세요. 논문이 보여 준 요즘 흐름, 그러니까 따라 하기보다 스스로 고르는 쪽과도 맞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클론이 낮게 평가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원료일 수 있다는 점도 기억해 두세요. 같은 구조라도 원료의 질이 결과를 바꿉니다.
오래가는 향을 설계하세요
평점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것이 지속력이라는 결과는 실용적인 힌트입니다. 첫 몇 분의 화려함보다 몇 시간 뒤에도 남아 있는 잔향이 더 큰 인상을 남긴다는 뜻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시향지를 바로 판단하지 말고, 한 시간 뒤와 반나절 뒤에 다시 맡아 보는 습관을 들이세요.
반대로 확산력이 강할수록 평점이 높아지지는 않았습니다. 멀리 퍼지게 만드는 것보다, 가까이에서 오래 좋은 향을 설계하는 쪽이 낫다는 해석도 가능합니다.
누구와 배우느냐가 스타일을 만듭니다
스타일이 세 다리 건너까지 퍼진다는 결과는 배우는 환경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같은 선생님, 같은 모임 안에서만 맡고 배우면 향이 비슷해지기 쉽습니다. 다른 계열의 조향사가 만든 향, 다른 지역에서 사랑받는 향을 일부러 찾아 맡아 보세요. 중동에서 사랑받는 우드와 앰버의 세계는 세계 주류와 꽤 다른 문법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혼자 작업하는 시간도 아끼세요. 이 논문에서 혼자 작업한 조향사들이 흐름을 더 크게 흔들었습니다. 배울 때는 함께, 만들 때는 가끔 혼자. 그 균형이 자기 목소리를 만듭니다.
조향대에서 바로 해 볼 연습 세 가지
논문을 읽고 끝내면 아깝습니다. 내일 조향대에서 바로 해 볼 수 있는 연습을 세 가지 골랐습니다. 비율은 각자의 원료와 취향에 맞춰 정하세요.
연습 1. 원료 다섯 개로 하나의 향 완성하기
원료를 딱 다섯 개만 꺼내 놓고 하나의 향을 완성해 보세요. 다 만들었으면 원료를 하나씩 빼 보면서, 뺐을 때 향이 무너지는 원료와 별 차이가 없는 원료를 가려냅니다. 차이가 없는 원료가 있다면 그 자리에 더 의미 있는 원료를 넣을 수 있다는 뜻입니다. 단순해진 요즘 향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몸으로 익히는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연습 2. 처음 보는 짝 찾기
자주 쓰는 원료 목록을 펼쳐 놓고, 지금까지 한 번도 같이 써 본 적 없는 두 원료를 골라 짝지어 보세요. 대부분은 어울리지 않을 겁니다. 그래도 열 번에 한 번쯤은 "어, 이거 괜찮은데?" 하는 순간이 옵니다. 그 짝을 노트에 적어 두세요. 논문이 말하는 새로움은 이런 짝에서 시작됩니다.
연습 3. 반나절 시향 일지
같은 향을 시향지 세 장에 묻혀 두고, 바로, 한 시간 뒤, 반나절 뒤에 맡으며 느낌을 적어 보세요. 처음에 좋았던 향이 반나절 뒤에는 사라져 있기도 하고, 처음엔 밋밋했던 향이 나중에 빛나기도 합니다. 평점과 가장 강하게 연결된 지속력을 감각으로 익히는 연습입니다.
이 논문을 읽을 때 조심할 점
- 심사 전 논문입니다. 학술지 심사를 거치며 숫자와 해석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 배합비가 아니라 노트 목록을 분석했습니다. 브랜드가 소개한 노트와 사용자 투표가 바탕이라 실제 원료 구성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연구팀도 실제 원료에서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
- 평가는 사이트 이용자의 투표입니다. 지속력·확산력·평점은 측정 장비가 아니라 사람들의 투표로 매긴 값입니다.
- 클론 판정도 사용자 기록에 기댑니다. "이 향수를 떠올리게 한다"는 기록에서 출발했기 때문에 모든 클론을 찾아낸 것은 아닙니다.
- 1965년 이전 자료는 적습니다. 1900~1965년 향수는 전체의 2%가 안 돼 그 시기의 흐름은 불확실합니다.
- 사라진 향수는 빠져 있습니다. 단종 기록이 없어서 어떤 향수가 시장에서 살아남았는지는 분석하지 못했습니다.
- 원인은 아직 가설입니다. 향수가 단순해진 이유로 든 설명들은 연구팀의 가능한 해석이며, 오크모스 사례를 빼면 직접 검증되지 않았습니다.
이 글에 나온 말들
- 노트 — 향수에서 맡을 수 있는 하나하나의 향. 레몬, 장미, 바닐라처럼 부릅니다.
- 어코드 — 여러 원료를 섞어 하나의 인상으로 들리게 만든 향의 단위.
- 알데하이드 — 비누나 갓 다린 천 같은 밝고 반짝이는 느낌을 주는 원료 계열. 샤넬 No 5로 유명해졌습니다.
- 지속력 — 뿌린 향이 얼마나 오래 남는가.
- 확산력(실라주) — 향이 몸 주변 공기로 얼마나 퍼져 나가는가. 프랑스어 sillage에서 온 말입니다.
- 원본 — 이 논문에서 다른 향수들이 따라 한 앞선 향수.
- 플랭커 — 같은 브랜드가 원래 향수의 이름과 인상을 이어받아 낸 변형판.
- 클론 — 다른 브랜드가 이미 있는 향수를 닮게 만든 향수.
- 오크모스 — 참나무에 붙어 자라는 이끼에서 얻는 원료. 숲 바닥 같은 깊은 향을 내며, 알레르기 우려로 사용이 제한돼 있습니다.
- IFRA — 국제향료협회. 향료 원료의 사용 한도 기준을 정합니다.
- 배합비 — 어떤 원료를 어떤 비율로 섞어 향 하나를 만드는지 적은 설계도. GrassAccord가 판매하는 것입니다.
맺으며
120년 치 향수를 한 장에 펼쳐 놓으니, 향수도 음악이나 패션처럼 유행을 타고 서로를 닮아 가며 바뀌어 왔다는 것이 보입니다. 알데하이드가 저물고 바닐라가 떠올랐고, 여성 향수의 시대가 중성 향수 쪽으로 넓어졌고, 샤넬 No 5 하나에서 68개의 향수가 가지를 쳤습니다.
그리고 지금의 흐름은 분명합니다. 재료는 줄이고, 조합은 새롭게, 그리고 오래가게.
이제 막 조향을 시작한 분에게 이 흐름은 좋은 소식입니다. 값비싼 원료를 수십 가지 갖추지 않아도, 몇 가지 원료로 새로운 짝을 찾는 것이 지금 시대의 실력이니까요. 언젠가 여러분의 향수가 누군가의 족보 맨 위에 오를지도 모릅니다. 향은 만국의 언어입니다. 그 언어로 자기 문장을 쓰는 첫걸음에 GrassAccord가 함께하겠습니다.
논문 출처: Vahid Satarifard, Fabian Baumann, Geetanjali Minsky, Laura Sisson, Lou M. Haux, Christophe Laudamiel, Nicholas A. Christakis. "Cultural Evolution of Perfumes since 1900." arXiv:2607.19520, 2026년 7월 21일 공개(학술지 심사 전). 원문: https://arxiv.org/abs/2607.19520 (DOI 10.48550/arXiv.2607.19520) · 이 글의 숫자는 모두 논문 본문과 보충 자료에서 옮겼으며, 문장은 GrassAccord가 요약·해설한 것입니다. "해설" 장은 논문의 결론이 아니라 GrassAccord의 해석입니다. 향수 이름과 브랜드 이름은 각 소유자의 상표입니다.